[컬처 인사이드]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 게임'을 넘지 못한 이유
[컬처 인사이드]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 게임'을 넘지 못한 이유
생존게임 포맷의 본질을 생각할 때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4.06.06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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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게임 포맷은 일정한 팬이 있어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는 사례가 적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가 ‘더 에이트 쇼’와 ‘오징어 게임’의 비교이다. (자료사진: 넷플릭스 캡처/굿모닝충청=노준희 기자)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생존게임 포맷은 일정한 팬이 있어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는 사례가 적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가 ‘더 에이트 쇼’와 ‘오징어 게임’의 비교이다.

제작비나 스케일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르지만, 일단 더 에이트 쇼와 오징어 게임은 같은 생존게임 포맷에 바탕을 둔다. 8명의 게임 참여와 456명의 참여는 규모면서 차이가 크다. 

상금도 전혀 다르다. 오징어 게임이 456억을 두고 다툼을 벌이지만, 더 에이트 쇼는 가늠할 수 없는 액수다. 말 그대로 시간에 따라서 무한정으로 늘어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1억의 돈이 되는데 더 에이트 쇼에서는 시간이 돈이 된다. 그 돈은 마치 쇼의 시간을 연장할수록 불어나는 입장료와 같다. 

물론 시간 연장을 하는 이는 8명의 행위를 보는 누군가다. 공연 시간의 결정을 관객이 하는 것이니 문화 민주주의의 실현 같다.

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있듯 더 에이트 쇼는 오징어 게임과 같이 잔인하지 않다. 더구나 참으로 착한 콘텐츠인 듯싶다. 자극적인 콘텐츠와 달라 보인다. 오징어 게임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오징어 게임처럼 경쟁에서 밀린다고 해서 총으로 쏴 죽이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대결 중에 떨어져 죽는 일도 없다. 친한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어야 하는 잔혹성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상황이 끝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생명을 잃지 않게 조처한다. 하지만 이것이 더 잔인하게 작동한다. 

오징어 게임은 뒤로 갈수록 잔인성의 감각은 떨어지고 오히려 인간애가 부각이 된다. 잔인한 현실을 넘어 인간적 가치를 갖는 이들이 점점 승리에 다가가기를 열망하게 된다. 

어느새 혐오감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심지어 다음 시즌을 고대하며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주인공이 복수에 나서 주길 기대한다. 

더 에이트 쇼는 반대로 간다. 초기에는 서로 합심해서 위기와 어려움을 돌파해 간다. 하지만 점점 상황에 따라 인간의 부정적인 점들이 부각이 되기 시작한다. 

인간적 가치는 고사하고 동물적인 감각을 넘어서서 범죄는 물론 도덕·윤리적으로도 용인할 수 없는 비열하고 잔혹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는다.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통을 가하는 방법들은 시간을 연장하는 수단이 된다. 인간이 얼마나 악랄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럴수록 결국 보고 싶지 않은 콘텐츠가 되어 간다. 

더구나 가장 약자인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결말은 관습적이다. 참담한 현실을 다시 반복해 내는 것이기에 유쾌하지 않다. 이 정도가 되면 과연 이용자들이 시즌 2를 기대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이 생존게임 포맷을 진일보시켰다면, 더 에이트 쇼는 초기 버전으로 회귀한 셈이 되었다. 다만, 약간의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이를 중화하려 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생존게임 콘텐츠들이 처음에 주목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배경과 본질을 짚어야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고 인간도 착하지는 않다’라는 점이다. 세상에 관한 기존의 낭만적 인식을 무너뜨리는 콘텐츠의 등장은 두 가지 맥락에서 가능했다. 

하나는 르네상스 이후에 인문주의적 인간애와 인간다움을 강조한 전통에 대한 반발이다. 동양에선 인간적 예와 신의를 중시한 공자 철학에 대한 저항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대에도 이런 콘텐츠가 현실에 좌절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제도 교육에서 인간다움과 이상적 가치를 주입받은 젊은 세대에게 현실은 너무 고통스럽고 잔혹하므로 생존게임 방식의 콘텐츠 포맷이 눈길을 끌었다. 

어른들과 사회가 알려준 사실이 거짓이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콘텐츠일수록 마니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환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미 현실에서 젊은 세대는 처절하게 비참함을 맛보았기 때문에 콘텐츠를 통해 재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 이상이 필요했다. 이미 젊은 세대를 가로지른 이들은 그 현실의 본질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러니 여러 세대가 더 에이트 쇼 같은 콘텐츠를 다시 시간과 비용을 내고 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착한 개인들이 악한 본성을 뿜어내게 만드는 특정 상황의 도래, 그것은 되도록 피할 수 있으면 좋다. 차라리 그것에 관한 콘텐츠에 시간을 들일 것이다. 

요컨대, 더 에이트 쇼라는 드라마 무대에 시간을 연장해 줄 관객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관객 즉 이용자는 괴로운 도탄의 상황에 있다. 더 에이트 쇼에서 8명에게 시간과 돈을 들이던 이들과 상황이 충분히 다른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현실에서 이 공연을 연장하는 것은 바로 8명과 같은 구독자들이다. 픽션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큐가 아닌즉슨 사실 확인이 아니라 사실을 넘어 무엇인가 그 현실의 타개에 대한 상상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재미있든 통쾌하든 그럴듯하게 말이다. 

최소한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돈을 던져주는 그들에 대한 응징을 기대하는 쇼가 픽션에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쉽지 않으니. 오징어 게임 시즌 2도 이 점을 간과한다면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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