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활용공예가다⑬] 버리지 않고 고쳐입기, 슬로우패션쇼
[나는 새활용공예가다⑬] 버리지 않고 고쳐입기, 슬로우패션쇼
하정현 커스텀의류공방 소우유 대표…청주시 흥덕구 흥덕로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4.06.0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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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현 커스텀의류공방 소우유 대표. 사진=청주새활용시민센터/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빈티지는 절대 입지 않는 사람.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의 빈티지 매장들을 꿰고 있고, 빈티지로만 옷을 입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수강생님들을 주기적으로 모집해서 매장에 가서 ‘리디자인하면 예쁠 옷’을 구해와 ‘리디자인 수업’을 연다. 매년 리디자인한 옷들로만 구성된 슬로우패션쇼도 열고 있다.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누가 입었을 줄 알고?” 하면서 구제 옷을 멀리했었다. 그러나 예쁜 옷 입기는 좋아해서, 새 원단을 사서 옷을 만드는 클래스를 열었다. 공예 쪽으로 일을 시작하니, 학생 때와는 다르게 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입을 열어 말하는 대로 새 인연들이 생기는 셈이다. 재봉틀을 한다고 하니 어느 날 연락이 왔다. ‘ 빈티지를 팔고 있는데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리폼할 사람을 쭉 찾아왔다고‘ 당시,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나를 찾아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쿵쾅 쿵쾅거렸다.

전화를 받고 바로 서울에서 청주를 가는 버스를 예매해서 그 사람을 만났다. 빈티지를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남성 빈티지들을 깔끔하고 차분하게 팔고 계셨다. 본격적으로 50평대 매장을 열어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동료를 구하고 있던 찰나, 내 명함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그는 그동안 관심을 두고 모아두었던 브랜드와 회사 명함들을 주고받으면서 들뜬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두 달 뒤, 50평대 매장에는 빈티지 옷이 가득했고, 그 안쪽엔 내가 가지고 있던 재봉틀 1대가 자리했다. 원하는 리폼과 리디자인을 반복하면서 생각보다 정말 힘들어서 재단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샌 밤도 많았다. 빈티지가 싫어질 지경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만들고 싶은 원피스 디자인이 떠올라서 원단사이트와 시장을 누비는데, 마음에 드는 원단이 그날따라 없었다. 사실 평소에도 ’아! 이거다!’ 하는 원단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빈티지 사입하는 곳을 따라갔다. 옷이 무지막지하게 쌓여서, 걸려서 있는 옷들이 조금은 낯설어서 처음에는 옷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살짝 꼬집어 집는 것처럼 집었다. 그러다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엄청난 몰입을 경험했다. 등이 너무 뜨거워져서 땀이 또르르 또르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추상적으로 상상해온 디자인들이 여성 빈티지 쪽에 꽤나 있었고, 무엇보다 원단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원단만 봐도 이걸로 어떤 걸 만들지, 이 옷은 이 디자인이 아쉬우니 이것만 수정하면 반드시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던지, 하는 기운찬 예감이 들었다. 누가 입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이 설렘을 전하고 설득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같이 온 그를 불러 말했다. “내가 원했던 모든게 여기에 있어.”

2022 리디자인 패션쇼. 사진=청주새활용시민센터/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그리고 6달 뒤, 옷을 리디자인하는 클래스를 열었다.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수강생님들이 말해주었다. 재미도 재미지만 정말 뿌듯하다고, 버릴 수 있는 옷이었거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중고옷이었는데 이걸 다시 살려내서 세상에 공개되는 순환이 좋다고, 재밌기까지 하는데, 의미까지 있구나. 이걸 하시는 분들이 입 밖으로 직접 말해주는구나. 하고 구제의류의 매력이 깊이 빠져버렸다.

그 후 리디자인 수업의 비중이 늘어나고 매년 ‘다정한’ 분위기의 패션쇼를 열었다. 다정한 패션쇼의 모델들은 일반인이다. 사이즈 무관, 연령대 무관이다. 워킹할 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도 된다. 온 사람들 중 반가운 얼굴이 보이면 토끼 눈으로 바라보며 손 인사를 해도 좋다. 걷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경직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그래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패션쇼를 만들어나갔다.

리디자인을 하러 공방에 오는 수강생님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패션쇼에 투영시켰던 것이다. 흥미와 재미로 시작했지만, 구제의류에 마음을 열게 되면서 패션업계가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재미와 사명감이 동등하게 자리잡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유엔 연합(United Nations Alliance for Sustainable Fashion)은 패션 산업이 총 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  한다고 보고했으며 , 이는 항공편과 해상 운송을 합친 배출량보다 많다.

학창 시절부터 사람의 가능성과 장점을 집중해서 봐주고 그걸 당사자에게 말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들도 그런 나를 좋아해 줬다. 엄청나게 걸려있는 구제 옷들 속에서 옷의 장점만을 바라봐주고 그를 최상화하는 경험이 곧 삶의 연장선이자, 운명같이 느껴진다. 그 시선은 일의 현장에서 더욱 연습되어 공방을 들리는 수강생들에게 확장된다. 수강생님들은 그런 나를 좋아해주신다.

내가 당시에 바라는 것을 입 밖에 용기 내어 솔직하게 꺼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 문장은 서울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전 지역으로 퍼진다. 무엇보다 인연의 실들이 조용히 촘촘하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인연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주곤 한다. 이 순간에 마음의 문을 여느냐에 따라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이 삶에 생기지 않을까.

삶에서 평생 지니고 싶은 기술인 재봉틀, 평생 사명을 다하고 싶은 빈티지는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모두 다정한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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