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89] 왕배나무, 기억의 조각…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89] 왕배나무, 기억의 조각…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4.05.15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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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소용마을 입구에는 53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줄기 부분 절반이 훼손되어 보존 처리될 만큼 큰 상처를 품고 있지만, 그 크기와 생기가 시선을 압도한다. 

어림잡아 봐도 나무 둘레가 7m 이상, 수고는 18m를 넘어서는 큰 나무다. 그러나 소암리 느티나무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나이테 속에 숨겨진, 오래된 기억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소암리 느티나무를 ‘왕배나무’라 부른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옛날에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광천읍은 완만한 능선의 오서산과 풍부한 수량을 함유한 광천천이 있어 광천장을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히 이뤄졌다. 

서해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과 내륙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고팔던 광천장은 강경시장 못지않은 큰 시장이었는데 조석간만의 차를 잘 이용하면 약 10km 떨어진 광천 옹암리 독배까지 큰 배가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옹암리 독배는 광천역이 생기기 전까지 구시장이라 불리며 서해에서 들어오는 어물을 중심으로 큰 시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큰 배는 독배에서 정박해 두고, 작은 돛단배는 소암리 느티나무에 매어 놓았기에 이 나무를 왕배나무라 불렀다.

<이 느티나무는 옹암포에 불이 꺼질 줄 모르던 상권 부흥의 시절, 바닷물이 바다와 11㎞ 떨어진 이곳까지 들어와 배를 매어놓았던 나무라 해서 왕배나무라 한다고 전해진다.> 왕배나무 앞에서 세워진 안내판을 읽고 나니 서글픈 마음이 밀려들었다. 

불빛 그득한 옹암포, 북적대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내려보며 싱그러움을 뽐냈던 느티나무는 그저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겨졌다. 

더욱 안타까웠던 건 그 기억을 가진 이들 또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동안 소용마을 사람들은 왕배나무에 제를 올렸다.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마을의 수호신이라 믿는 왕배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제 또한 사라졌다. 

사라지고 생기고, 떠나가고 만나는 게 우리 삶의 이치이고 한 부분이지만 때때로 그 당연함에 마음이 쓰라리다. 

왕배나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때 웅장함을 뽐냈을, 그러나 지금은 상처로 남은 나무의 한쪽이 자꾸 눈에 밟혔다.

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421-3 느티나무 537년(2024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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