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5주년 기념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재조명
3·1운동 105주년 기념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재조명
충북서 의암손병희기념사업·토론회 진행…유허지서 3·1절 기념행사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4.02.2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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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청주도시재생허브센터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토론회’에서 청암대 성주현 교수가 ‘종교지도자에서 민족지도자로, 손병희의 삶’이라는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29일 청주도시재생허브센터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토론회’에서 청암대 성주현 교수가 ‘종교지도자에서 민족지도자로, 손병희의 삶’이라는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3·1운동 105주년을 맞아 충북 출신 민족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정신과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의암손병희기념계승사업회 준비위원회와 충북뉴스는 29일 청주도시재생허브센터에서 ‘제105주년 3·1절 기념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민족의 독립을 염원한 의암 선생의 훌륭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청암대 성주현 교수는 ‘종교지도자에서 민족지도자로, 손병희의 삶’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의암 선생의 삶과 업적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강연은 ‘손병희는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3·1운동과 손병희’, ‘민족 운동가’, ‘동학 3세 교주, 천도교’, ‘교육가’ 대부분 교과서에 기록된 의암의 기록들이다.

정작 문제는 의암 선생이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에서 출생한 만큼 지역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민족지도자이지만 지역에서의 의암 선생에 대한 기념과 기억 추모 행사는 지극히 미진했다.

의암은 1861년 북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재가녀의 자식으로 가정과 사회에 불만이 많은 이른바 ‘비행 청년기’를 지낸 의암은 마치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어 선생은 1882년 동학에 입도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에게 고통을 전수받은 해월 최시형의 수제자로 동학 수도에 전념했다.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시천주 주문을 하루에 3만 독을 할 정도로 독실했다.

하면서, 1894년 동학혁명 당시 ‘통령’으로 동학군을 이끌고 우금치 전투 등에 참가해 사선을 넘나들었다. 동학혁명 이후 관의 지목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근대문명개화운동’을 배우고 전개했다.

당시 선생이 주창한 ‘삼전론’은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정신이다. 첫째 도전은 국가의 정신을 계발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며, 둘째 재전은 국가의 산업을 개발해 국력을 키워야 하고, 세 번째 언전은 외국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생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하고 중앙총부와 전국 72개 대교구, 각 군에 지방 교구를 설치하며 교세를 확장했다. 일제강점기 천도교인은 3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확장했다.

민족의 독립과 개화운동만큼 선생은 교육가로서도 앞장섰다. 보성학교(현 고려대학교)와 동덕여학교(현 동덕여자대학교)를 인수해 운영했다. 선생의 사위인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 전개와 각종 시민사회 운동의 시초로 불린다. 아울러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의 의암손병희선생 유허지 전경. 사진=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의 의암손병희선생 유허지 전경. 사진=성주현/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선생의 대표적인 업적은 3·1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며, 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일본 유학생의 2·8독립선언 이후 최린, 오세창, 권동진 등을 중심으로 3·1운동을 기획하고 33인의 민족대표를 이끌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불러일으켰다. 3·1만세운동은 그해 5월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되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선생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서울의 대한민간정부와 대한국민회의는 대통령에 손병희 선생을 추대했고, 조선민국임시정부는 선생을 정도령으로 추대했다.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선생은 1919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졌고, 병세 악화로 1920년 말쯤 석방된 후 우이동 봉황각에서 치료 중 1922년 5월 19일 돌아가셨다. 6월 5일 치러진 장례에는 10대의 자동차, 인력거 200대가 영구를 따랐고 5000여 명의 교도와 수천 명의 조문객이 30여 리에 뻗쳤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만큼 성대히 치러졌다.

민족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우리의 민족운동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영도적 위치에 있었으며 때로는 폭력노선, 때로는 개혁노선, 때로는 비폭력노선을 적절히 구사했다. 손병희는 일개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나타난 애국 지도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성 교수는 “의암 선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가? 충북에서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의암 선생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한 ‘의암손병희충북기념·계승사업회’ 준비위원회는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3월 1일 선생의 유허지에서 ’31절 105주년 기념식‘을 거행한 후 오는 4월 8일 창립할 예정이다.

제105주년 3·1절 기념토론회 참석자들. 사진=의암손병희기념계승사업회 준비위원회/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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